2008년 08월 17일
독립운동, 이승만 ,반일, 친일, 반공...용어정의부터하자
이승만 반일 정권
한... 열 번은 쓸까 말까... 스무 번은 궁시렁대다 결국은 포스팅하는 날 보면... 정말 입이 근질근질 거리는 녀석인 거 같네요.
이승만은 어떤 사람인가?
당시 상황은?
이승만의 수족이었던 친일파들은? 왜 이승만이 친일정권이라 불리는 가?
시가와 흑묘백묘론에서 간과하는 부분.
역사청산과 친일파 그리고 독립운동의 부정확한 정의
이승만은 어떤 사람인가?
이승만이 저명한 독립운동가였던 게 사실이고 당시 그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고 김구 선생이라든가 국내 항일지도자들이 곧바로 지지를 할 수 있었던 이유? 왕족이었기 때문입니다.
조선왕조를 계승하는 인물이었기 때문인데 이 조선왕조를 모독한 게 일본입니다. 당연히 심각할 정도로 정통성이 훼손된 조선왕조를 위해 반일을 주창하게 됩니다. 개인적으로나 정권시기에 대외적으로 반일노선을 걸은 건 분명하죠.
다른 말로 현재 우리의 대한민국의 자주성이라든가 현대의 관점이 아닌 조선왕조의 관점으로 모든 일이 재단되었던 게 많은 문제점을 야기시켰고 지금까지도(대선후보 이회창 시절 이씨 종친회의 절대적인 지지;) 문제가 많이 되고 있죠.
당시 상황은?
일제 강점기와 미군정 당시 이후 이승만정권까지 공통된 분모가 하나 있습니다. 반공.
우습게 독립운동을 가장 치열하고 목숨걸며 했던 만주독립군의 상당수와 여운형 등을 비롯한 공산주의자 그리고 통합주의(빼앗긴 조국을 찾는데 이념가지고 말하지 말자)를 주창했던 사람들이 모두 백의사와 같은 우익폭력단체와 저 공통분모를 가진 이유로 군정에 충성했던 행정관료 특히 경찰들의 방조와 고문으로 아직까지 명예회복이 안된 상태에서 목숨을 잃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김구선생의 암살이었죠.
이후에도 한국에 들어오지 못한 연안파로 불린 만주독립군들의 강제 해체-북한에게 당했지만 이들이 남한으로 돌아올 생각을 안하고 포기하게 된 이유가 되는 게 친일파들의 정권획득에 있습니다.(여기서 이승만이 친일정권이란 말이 나오는 듯)
이들은 당시 혼란스러운 중국의 모습도 있지만 만주군이 무장한 상태로 한국으로 진주하려 했을 정도로 공산국가화되고 있던 중국과는 상당한 공감대가 형성된 상태로 알고 있습니다. 이후 조선족으로 살수 있게까지 배려하고 한국전당시 중용하기도 했죠. 항일노선에서 같이 피흘린 동지들이란 겁니다.
비슷한 시기의 전범이었던 독일 수용소장 하이리만? 하이트만? 머라는 아저씨 있잖아요. 칸트의 논거를 이용해 자신이 무죄임을 주장했을 때, 유태계 철학자가 한마디했죠. 얼마 전 그... 수능강사도 이야기했는데 이름이 기억 안나네요. "너의 생각없음이 유죄다"
맞습니다. 결국 유럽과 같이 친나치였던 자들에 대한 철저한 과거청산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면죄부를 줬지만 국민들이 공감하고 있지 못하고 독립운동가들은 그들의 탄압이 무서워 조선족으로... 미국인으로 살게 되어 버린 거라는 거죠. 그게 지금의 현실입니다.
이승만의 수족이었던 친일파들은? 왜 이승만이 친일정권이라 불리는 가?
잠시 말이 샜는데 다시 돌아와서 이승만의 수족이 되어 이승만정권을 이룬 자들인 친일파들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요? 노무현 정권에 이들에 대한 정의를 하자. 청산은 포기하고 너무 오래 지났으니 제대로라도 전하자 했지만 결국 논의 자체를 거부한 한나라당과 민주당에 의해 누더기가 되고 우여곡절 끝에 일단 나오긴 했죠.
영혼이 없는 부류, 왕조를 위한 충성으로의 친일, 치부를 위한 적극적 친일, 이광수와 같은 변절자들까지... 다양한 분류와 친일행위에 따라 심판해야 할 정도가 다를 수도 있습니다.
삼양사 같은 경우, 치부를 위한 친일로도 많이 이야기 되는데 2006년까지 생존하셨던 할머님의 말씀에 따르면 반민특위 나중의 쿠테타 직후 박정희가 잡아들일 때도 가장 반대한 사람들이 지방민들이었습니다. 그게 그 분의 집안이 일본강점기때 사업을 했고 일정부분 한국의 부가 일본으로 넘어가는데 기여를 했지만 대부분의 재산을 당시 일본의 수탈에 힘들어 하는 지방(호남)민들에게 돌려주었을 뿐 아니라 인재를 적극적으로 발굴해 중국과 일본으로 유학시켰고 이를 위한 지원 역시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서슬퍼런 쿠테타 군부를 상대로 시위를 해 구해냈죠.
안동 김가같은 경우는 꽤나 복잡한데요. 제가 잘 가는 추유호님의 블로그에 쓴 댓글을 그대로 복사합니다.
독립운동가의 자식들은 한국에 남았고 남은 동생들이 그래도 형님 자식이라고 키웠는데 친일파 밑에서 자랐다 보니 아버지와는 전혀다른 길을 갔습니다. 일본과 독재에 충성했고 상당한 위치에 올라갔습니다. 이후 독립운동가의 자손이라고 국회에 까지 진출해떵떵거리고 살다 꽤 오래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이 경우가 독일 유태인수용소장과 같은 영혼이 없는 부류로 볼 수 있습니다. 지금의 공무원처럼 말이죠. 얼마 전까지 법과 교육으로 꾸준히 공무원이 정치색을 가져서는 안된다고 교육 받았고 그 정치색이 없다는 것은 무조건적인 정권을 향한 충성인 겁니다. 전문성이 있지만 생각이 없는 거죠. 경찰도 대표적인 예로 볼 수 있습니다. 지금의 검찰 역시.
왕조를 위한 총성의 방편으로서의 친일은 대표적인 게 이완용이죠. 치부를 위한 건 송씨 집안.
이광수와 같은 변절자들은 바로 최근의 뉴라이트와 같은 자들이죠. 뉴라이트의 대부분들이 북한의 주체사상을 연구했던 사람이란 걸 아시는 분들도 꽤 될거라 생각합니다. 이런 부류들은 영혼이 없는 친일파 보다 더 심하게 꼬리를 흔들었습니다. 기회주의자. 지식인이 자신의 양심과 가치관을 버렸을 때 어느 만큼 변할 수 있는 지 잘 알 수 있는 쪽들입니다.
최근의 예를 보면 김문수라든가 하는 학생운동 변절자들의 한나라당에서의 성공과 뉴라이트 연합을 이루는 지식인들이 대표적이겠죠 안병직 교수가 친일사관이란 말을 듣는 이유도 이쪽과 관련되서일 겁니다. 수치적 연구는 좋은데 어떻게 이용될 지 1g이라도 생각해보았다면 적어도 도요다로부터 돈을 받아 연구하진 않았을 겁니다. 최소한의 면피를 위해서라도요. 전 그래서 저 사람이 친일파라고 생각하거든요. 1g의 영혼조차 없는 이가 리더스에 있을 때 어떤 일이 발생하는 지는 우리가 지금 잘 체감하고 있죠.
시가와 흑묘백묘론에서 간과하는 부분
한줄이면 됩니다. 역사청산의 여부.
쿠바는 쿠테타를 통해 친미자본을 쫓아냈고 미국의 견제로 경제파탄이 발생했지만 아직까지도 사회체제 전복이 이루어지지 않을 만큼 충분한 지도력이 발휘됩니다. 중국 역시 마찬가지고요.
처음 문제가 발생하자 이를 해결했는데 이후 두번째 문제가 발생하니 그때 그에 맞는 해결법을 찾는 거랑 첫 문제 해결도 못했는데 두번째 문제 답가져 와서 첫 문제 풀라고 하는 거랑 같은 거죠. 한국은 여전히 첫 문제를 해결하고 있지 못합니다.
역사청산과 친일파 그리고 독립운동의 부정확한 정의
역사청산과 친일파에 대한 면죄부는 "범죄자면 어때? 경제만 살리면 돼"라는 현실로 나타났다고 생각합니다. 잘못된 자가 법적 도덕적으로 지탄 받지 않고 존경 받는 세상. 뒤틀린 천민자본주의의 표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반공이면 친일파도 다 괜찮아라는 남의 나라 쌀국의 생각에 동조하며 자신의 정권 지키기에 급급했던 군부쿠테타 세력과 왕조개념의 이승만.
거기다 독립운동가들의 부정확한 정의는 마땅히 지켜져야 할 이 땅의 정의가 바로 서지 않아 지금 우리가 당하고 있는 모든 일의 가장 기본적인 '개념'이 없음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세부적으로 본다면야 당연히 다른 문제지만 근본적으로 우리가 어떤 생각으로 사는 지... 곰곰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나 싶네요.
미국? 개판인 나라입니다만 적어도 끝없이 하나만큼은 강조합니다. 미국인은 미국이 지킨다. 다른 나라의 위신? 체면? 정체성 다 필요없습니다. 미국의 이익, 미국인의 인권을 위해서라면 나라도 전복시키겠다는 철저한 자국민 보호. 무엇이 국민이 모병제여도 자발적으로 목숨걸고 나라에 충성하게 만드는 근본적인 이유인지...
잡설
저도 잘 몰랐습니다만 연좌제가 폐지되기 전까지 집안이 만주에서 독립운동했다는 이유로 공무원이 못되었었다네요. 저희 집은 방계임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_- 그래서 집안에서 독립운동하신 분을 없는 사람 취급했습니다. 제 아버님께서는 어릴 적에 미나리꽝이라는 썩은 물냄새 가득한 시궁창과 같은 곳 옆에 움막 짓고 사셨답니다.
어머님은 안동 김가십니다. 둘이 야반도주해 연애결혼하셨었는데 한다리 건너면 연결 안되는 데가 없습니다. 사회 곳곳에 포진한 친척. 닥치고 조용히 살면서 마음 편히 자신의 삶을 위해 노력할 수 있는 환경이 혼란스러운 시대에는 축복이었던 만큼 굉장히 잘된 케이스들이 많습니다.
친가는 어떨까요? 7대째 기독교 집안인데요. 잘살진 못합니다. 이쪽도 전 가문이 독립운동한 게 아니라서 기독교에 빠졌던 저희 집안은 기독교가 친일했듯 적당히 영혼없이 살며 공장짓고 잘살면서 간간히 독립운동자금도 주고 그러면서 살았다고 합니다. 그러다 모종의 사건으로 쫄딱 망했는데요. 어쨋든 저런 원죄와 함께 망하니 지독하게 편협하고 공격적인 성향이고 나 밖에 모릅니다. 힘들게 사셨으니까요.
외가는 참 넉넉한 마음으로 삽니다. 인심은 곳간에서 난다는 말이 절절하게 와닿는 거죠. 오로지 하나님과 나 둘 밖에 모르고 사는데다 이제는 진절머리 내면서 "다 필요 없고 나만 잘먹고 살면 된다"라고 외치고 삽니다. 그게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현실입니다.
어머님이 오신 뒤로 살림이 눈에 띄일 정도로 펴 저는 유복하게 자랐습니다만... 그 전의 살던 모습들은 비참함 그 자체였죠. 어릴 적 기억이 아직도 생생할 만큼이니...
꼬일 대로 꼬인 상황이니 제대로 된 역사청산은 안되겠지만 적어도 도덕적인 죄라도 물어야 아주 기본적인 "나쁜 짓하면 벌받는다"가 성립하지 않을까요? 우리는 도덕적으로 그렇게 배우고 그에 기반한 법 속에 사는 사람들 아닌가요?
아 글쓰다보니 생각난건데 2004년에 외할머님을 뵈러 외할머님 집안의 가솔로 있던 할머님께서 미국에서 오셨었습니다. 남편이 미술교사였는데 빨갱이였다는군요. 외할머님도 지주집안이었지만 6.25 당시 피해라고는 없었습니다. 당시 덕을 쌓고 살았는 가 아니었는 가와 친일했는 지의 여부가 도리어 북한군들의 인민재판의 주된 방식이었다 하더군요.<-인심을 얻기 위해. 나중에 그 할머님께서는 빨치산하는 남편 밥해주러 지리산까지 가서 고상하셨다가 외할머님이 숨겨주신 덕분에 후일 도미까지(아들따라;) 하실 수 있었다더군요.
외증조할아버님은 일본강점기때부터 그 곳 군수셨고 할아버님은 국민학교 교장이셨습니다. 한다리 건너면 김좌진 장군과 친척이시고 그래서 증조할아버님들께서 외증조할아버님의 돈을 가지고 만주로 독립운동자금도 보내 셨었답니다. 그래서 나중에 훈장도 받으셨죠. 친일일까요? 빨갱이일까요? 아니면 독립운동가일까요?
그냥 다 까놓고 이야기해보자는 기초적인 합의조차 안되고 그런 시끄러운 이야기는 경제발전에 저해된다면서 지금까지 흐르고 흘러 60년이 지났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 법이 바로 선 나라입니까? 법이 바르게 집행된 나라입니까? 도덕적으로 나쁜 짓을 한 사람이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는 나라입니까?
하야시 밑에서 중간보스 노릇하던 김두한이 머 한게 있다고 독립운동가처럼 인식되기나 하고... 하야시는 해방 뒤 건축협회 부회장인가까지 하며 잘살질 않나... ㅎㅎ
한... 열 번은 쓸까 말까... 스무 번은 궁시렁대다 결국은 포스팅하는 날 보면... 정말 입이 근질근질 거리는 녀석인 거 같네요.
이승만은 어떤 사람인가?
당시 상황은?
이승만의 수족이었던 친일파들은? 왜 이승만이 친일정권이라 불리는 가?
시가와 흑묘백묘론에서 간과하는 부분.
역사청산과 친일파 그리고 독립운동의 부정확한 정의
이승만은 어떤 사람인가?
이승만이 저명한 독립운동가였던 게 사실이고 당시 그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고 김구 선생이라든가 국내 항일지도자들이 곧바로 지지를 할 수 있었던 이유? 왕족이었기 때문입니다.
조선왕조를 계승하는 인물이었기 때문인데 이 조선왕조를 모독한 게 일본입니다. 당연히 심각할 정도로 정통성이 훼손된 조선왕조를 위해 반일을 주창하게 됩니다. 개인적으로나 정권시기에 대외적으로 반일노선을 걸은 건 분명하죠.
다른 말로 현재 우리의 대한민국의 자주성이라든가 현대의 관점이 아닌 조선왕조의 관점으로 모든 일이 재단되었던 게 많은 문제점을 야기시켰고 지금까지도(대선후보 이회창 시절 이씨 종친회의 절대적인 지지;) 문제가 많이 되고 있죠.
당시 상황은?
일제 강점기와 미군정 당시 이후 이승만정권까지 공통된 분모가 하나 있습니다. 반공.
우습게 독립운동을 가장 치열하고 목숨걸며 했던 만주독립군의 상당수와 여운형 등을 비롯한 공산주의자 그리고 통합주의(빼앗긴 조국을 찾는데 이념가지고 말하지 말자)를 주창했던 사람들이 모두 백의사와 같은 우익폭력단체와 저 공통분모를 가진 이유로 군정에 충성했던 행정관료 특히 경찰들의 방조와 고문으로 아직까지 명예회복이 안된 상태에서 목숨을 잃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김구선생의 암살이었죠.
이후에도 한국에 들어오지 못한 연안파로 불린 만주독립군들의 강제 해체-북한에게 당했지만 이들이 남한으로 돌아올 생각을 안하고 포기하게 된 이유가 되는 게 친일파들의 정권획득에 있습니다.(여기서 이승만이 친일정권이란 말이 나오는 듯)
이들은 당시 혼란스러운 중국의 모습도 있지만 만주군이 무장한 상태로 한국으로 진주하려 했을 정도로 공산국가화되고 있던 중국과는 상당한 공감대가 형성된 상태로 알고 있습니다. 이후 조선족으로 살수 있게까지 배려하고 한국전당시 중용하기도 했죠. 항일노선에서 같이 피흘린 동지들이란 겁니다.
비슷한 시기의 전범이었던 독일 수용소장 하이리만? 하이트만? 머라는 아저씨 있잖아요. 칸트의 논거를 이용해 자신이 무죄임을 주장했을 때, 유태계 철학자가 한마디했죠. 얼마 전 그... 수능강사도 이야기했는데 이름이 기억 안나네요. "너의 생각없음이 유죄다"
맞습니다. 결국 유럽과 같이 친나치였던 자들에 대한 철저한 과거청산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면죄부를 줬지만 국민들이 공감하고 있지 못하고 독립운동가들은 그들의 탄압이 무서워 조선족으로... 미국인으로 살게 되어 버린 거라는 거죠. 그게 지금의 현실입니다.
이승만의 수족이었던 친일파들은? 왜 이승만이 친일정권이라 불리는 가?
잠시 말이 샜는데 다시 돌아와서 이승만의 수족이 되어 이승만정권을 이룬 자들인 친일파들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요? 노무현 정권에 이들에 대한 정의를 하자. 청산은 포기하고 너무 오래 지났으니 제대로라도 전하자 했지만 결국 논의 자체를 거부한 한나라당과 민주당에 의해 누더기가 되고 우여곡절 끝에 일단 나오긴 했죠.
영혼이 없는 부류, 왕조를 위한 충성으로의 친일, 치부를 위한 적극적 친일, 이광수와 같은 변절자들까지... 다양한 분류와 친일행위에 따라 심판해야 할 정도가 다를 수도 있습니다.
삼양사 같은 경우, 치부를 위한 친일로도 많이 이야기 되는데 2006년까지 생존하셨던 할머님의 말씀에 따르면 반민특위 나중의 쿠테타 직후 박정희가 잡아들일 때도 가장 반대한 사람들이 지방민들이었습니다. 그게 그 분의 집안이 일본강점기때 사업을 했고 일정부분 한국의 부가 일본으로 넘어가는데 기여를 했지만 대부분의 재산을 당시 일본의 수탈에 힘들어 하는 지방(호남)민들에게 돌려주었을 뿐 아니라 인재를 적극적으로 발굴해 중국과 일본으로 유학시켰고 이를 위한 지원 역시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서슬퍼런 쿠테타 군부를 상대로 시위를 해 구해냈죠.
안동 김가같은 경우는 꽤나 복잡한데요. 제가 잘 가는 추유호님의 블로그에 쓴 댓글을 그대로 복사합니다.
독립운동가의 자식들은 한국에 남았고 남은 동생들이 그래도 형님 자식이라고 키웠는데 친일파 밑에서 자랐다 보니 아버지와는 전혀다른 길을 갔습니다. 일본과 독재에 충성했고 상당한 위치에 올라갔습니다. 이후 독립운동가의 자손이라고 국회에 까지 진출해떵떵거리고 살다 꽤 오래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이 경우가 독일 유태인수용소장과 같은 영혼이 없는 부류로 볼 수 있습니다. 지금의 공무원처럼 말이죠. 얼마 전까지 법과 교육으로 꾸준히 공무원이 정치색을 가져서는 안된다고 교육 받았고 그 정치색이 없다는 것은 무조건적인 정권을 향한 충성인 겁니다. 전문성이 있지만 생각이 없는 거죠. 경찰도 대표적인 예로 볼 수 있습니다. 지금의 검찰 역시.
왕조를 위한 총성의 방편으로서의 친일은 대표적인 게 이완용이죠. 치부를 위한 건 송씨 집안.
이광수와 같은 변절자들은 바로 최근의 뉴라이트와 같은 자들이죠. 뉴라이트의 대부분들이 북한의 주체사상을 연구했던 사람이란 걸 아시는 분들도 꽤 될거라 생각합니다. 이런 부류들은 영혼이 없는 친일파 보다 더 심하게 꼬리를 흔들었습니다. 기회주의자. 지식인이 자신의 양심과 가치관을 버렸을 때 어느 만큼 변할 수 있는 지 잘 알 수 있는 쪽들입니다.
최근의 예를 보면 김문수라든가 하는 학생운동 변절자들의 한나라당에서의 성공과 뉴라이트 연합을 이루는 지식인들이 대표적이겠죠 안병직 교수가 친일사관이란 말을 듣는 이유도 이쪽과 관련되서일 겁니다. 수치적 연구는 좋은데 어떻게 이용될 지 1g이라도 생각해보았다면 적어도 도요다로부터 돈을 받아 연구하진 않았을 겁니다. 최소한의 면피를 위해서라도요. 전 그래서 저 사람이 친일파라고 생각하거든요. 1g의 영혼조차 없는 이가 리더스에 있을 때 어떤 일이 발생하는 지는 우리가 지금 잘 체감하고 있죠.
시가와 흑묘백묘론에서 간과하는 부분
한줄이면 됩니다. 역사청산의 여부.
쿠바는 쿠테타를 통해 친미자본을 쫓아냈고 미국의 견제로 경제파탄이 발생했지만 아직까지도 사회체제 전복이 이루어지지 않을 만큼 충분한 지도력이 발휘됩니다. 중국 역시 마찬가지고요.
처음 문제가 발생하자 이를 해결했는데 이후 두번째 문제가 발생하니 그때 그에 맞는 해결법을 찾는 거랑 첫 문제 해결도 못했는데 두번째 문제 답가져 와서 첫 문제 풀라고 하는 거랑 같은 거죠. 한국은 여전히 첫 문제를 해결하고 있지 못합니다.
역사청산과 친일파 그리고 독립운동의 부정확한 정의
역사청산과 친일파에 대한 면죄부는 "범죄자면 어때? 경제만 살리면 돼"라는 현실로 나타났다고 생각합니다. 잘못된 자가 법적 도덕적으로 지탄 받지 않고 존경 받는 세상. 뒤틀린 천민자본주의의 표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반공이면 친일파도 다 괜찮아라는 남의 나라 쌀국의 생각에 동조하며 자신의 정권 지키기에 급급했던 군부쿠테타 세력과 왕조개념의 이승만.
거기다 독립운동가들의 부정확한 정의는 마땅히 지켜져야 할 이 땅의 정의가 바로 서지 않아 지금 우리가 당하고 있는 모든 일의 가장 기본적인 '개념'이 없음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세부적으로 본다면야 당연히 다른 문제지만 근본적으로 우리가 어떤 생각으로 사는 지... 곰곰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나 싶네요.
미국? 개판인 나라입니다만 적어도 끝없이 하나만큼은 강조합니다. 미국인은 미국이 지킨다. 다른 나라의 위신? 체면? 정체성 다 필요없습니다. 미국의 이익, 미국인의 인권을 위해서라면 나라도 전복시키겠다는 철저한 자국민 보호. 무엇이 국민이 모병제여도 자발적으로 목숨걸고 나라에 충성하게 만드는 근본적인 이유인지...
잡설
저도 잘 몰랐습니다만 연좌제가 폐지되기 전까지 집안이 만주에서 독립운동했다는 이유로 공무원이 못되었었다네요. 저희 집은 방계임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_- 그래서 집안에서 독립운동하신 분을 없는 사람 취급했습니다. 제 아버님께서는 어릴 적에 미나리꽝이라는 썩은 물냄새 가득한 시궁창과 같은 곳 옆에 움막 짓고 사셨답니다.
어머님은 안동 김가십니다. 둘이 야반도주해 연애결혼하셨었는데 한다리 건너면 연결 안되는 데가 없습니다. 사회 곳곳에 포진한 친척. 닥치고 조용히 살면서 마음 편히 자신의 삶을 위해 노력할 수 있는 환경이 혼란스러운 시대에는 축복이었던 만큼 굉장히 잘된 케이스들이 많습니다.
친가는 어떨까요? 7대째 기독교 집안인데요. 잘살진 못합니다. 이쪽도 전 가문이 독립운동한 게 아니라서 기독교에 빠졌던 저희 집안은 기독교가 친일했듯 적당히 영혼없이 살며 공장짓고 잘살면서 간간히 독립운동자금도 주고 그러면서 살았다고 합니다. 그러다 모종의 사건으로 쫄딱 망했는데요. 어쨋든 저런 원죄와 함께 망하니 지독하게 편협하고 공격적인 성향이고 나 밖에 모릅니다. 힘들게 사셨으니까요.
외가는 참 넉넉한 마음으로 삽니다. 인심은 곳간에서 난다는 말이 절절하게 와닿는 거죠. 오로지 하나님과 나 둘 밖에 모르고 사는데다 이제는 진절머리 내면서 "다 필요 없고 나만 잘먹고 살면 된다"라고 외치고 삽니다. 그게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현실입니다.
어머님이 오신 뒤로 살림이 눈에 띄일 정도로 펴 저는 유복하게 자랐습니다만... 그 전의 살던 모습들은 비참함 그 자체였죠. 어릴 적 기억이 아직도 생생할 만큼이니...
꼬일 대로 꼬인 상황이니 제대로 된 역사청산은 안되겠지만 적어도 도덕적인 죄라도 물어야 아주 기본적인 "나쁜 짓하면 벌받는다"가 성립하지 않을까요? 우리는 도덕적으로 그렇게 배우고 그에 기반한 법 속에 사는 사람들 아닌가요?
아 글쓰다보니 생각난건데 2004년에 외할머님을 뵈러 외할머님 집안의 가솔로 있던 할머님께서 미국에서 오셨었습니다. 남편이 미술교사였는데 빨갱이였다는군요. 외할머님도 지주집안이었지만 6.25 당시 피해라고는 없었습니다. 당시 덕을 쌓고 살았는 가 아니었는 가와 친일했는 지의 여부가 도리어 북한군들의 인민재판의 주된 방식이었다 하더군요.<-인심을 얻기 위해. 나중에 그 할머님께서는 빨치산하는 남편 밥해주러 지리산까지 가서 고상하셨다가 외할머님이 숨겨주신 덕분에 후일 도미까지(아들따라;) 하실 수 있었다더군요.
외증조할아버님은 일본강점기때부터 그 곳 군수셨고 할아버님은 국민학교 교장이셨습니다. 한다리 건너면 김좌진 장군과 친척이시고 그래서 증조할아버님들께서 외증조할아버님의 돈을 가지고 만주로 독립운동자금도 보내 셨었답니다. 그래서 나중에 훈장도 받으셨죠. 친일일까요? 빨갱이일까요? 아니면 독립운동가일까요?
그냥 다 까놓고 이야기해보자는 기초적인 합의조차 안되고 그런 시끄러운 이야기는 경제발전에 저해된다면서 지금까지 흐르고 흘러 60년이 지났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 법이 바로 선 나라입니까? 법이 바르게 집행된 나라입니까? 도덕적으로 나쁜 짓을 한 사람이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는 나라입니까?
하야시 밑에서 중간보스 노릇하던 김두한이 머 한게 있다고 독립운동가처럼 인식되기나 하고... 하야시는 해방 뒤 건축협회 부회장인가까지 하며 잘살질 않나...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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